제 0의 언어
KVO 통역자원봉사단 16기
(2012. 6. 6 - 현재 활동 중)
노기석
2017년 작성
사회생활을 할수록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느낍니다. 업무상 모자란 일본어로 일본인들과 소통하는 것도 힘들지만, 같은 한국인 동료들과 소통하는게 더 힘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가족이나 친구처럼 정말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이 오히려 어렵고 힘겨울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대화하면서도 오해가 생기고 다툼이 생기는 것을 보면, 소통이란 말로 하는 대화가 전부이지 않음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제가 언어 외적인 소통을 처음 깨달은 곳은 인사동의 작은 관광안내소 입니다. 영어와 일본어를 연습할 겸 별 생각없이 안내 봉사활동을 시작했던 그 곳에서, 그 어떤 언어보다 따뜻하며 힘있는 미소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관광객분들을 안내하며 가장 큰 힘이 된 것이 그분들의 미소였습니다. 간단한 안내에도 환하게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분들로부터 따뜻함과 보람을 얻었고, 이는 서투른 언어도 이겨내는 자신감이 되었으며, 제 자신의 미소가 되어 다시 그분들께 전할 수 있었습니다. 국적을 넘어서, 언어를 넘어서, 성별과 나이와 종교를 넘어서 따뜻한 소통을 만들어준 미소 덕분에, 주말 아침을 희생해 봉사를 다녀와도 오히려 힘을 얻고 기분이 좋아지는 나날이었습니다.
안내소에서 배운 미소는 회사에서도 많은 순간에 힘을 발휘했습니다. 입사 면접때는 물론 선배들을 대할 때, 거래처를 만날 때, 누군가에게 요청이 있을 때, 실수했을 때, 아침저녁 인사할 때, 금요일 밤 10시에 술자리를 원하는 부장님께 거절할 때…… 안내소에서 주고받던 진심 어린 미소와 비교하면 다소 조미료가 첨가될 때도 있지만, 미소와 함께 소통하는 습관은 지금도 정말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하면서 쌀쌀맞은 표정과 말투로 안내하는 것 보다, 언어는 서툴지만 밝게 웃으며 친절히 안내하는 것이 단연코 훌륭한 안내입니다. 외국어가 모자라서, 혹은 매 주 봉사하는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서 활동을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에겐 훌륭한 제 0의 언어능력이 있으며, 봉사활동을 통해 그 소중한 힘을 키울 수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